가령 그의 옷차림 같은 거라든가…. 딱히 단정하다고는 할 수 없는 옷매무새는 아마도 그의 털털한 성격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벌어진 앞섶 사이로 보이는 쇄골이라든가, 붕대에 감겨있지만 굴곡을 알아보기 어렵지 않은 복근이라든가, 그것도 아니면 훤히 드러난 맨가슴 같은 것은 혼자서 마음앓이를 하고 있는, 아직은 청춘인 아게하에게는 지나치게 자극적인 광경이었다.
그 다음에 눈에 들어온 건 각선미. …라고 표현하니 어쩐지 좀 이상하지만 달리 생각나는 말도 없으니 그냥 편의상 각선미라고 하도록 하자. 여하튼, 평소에는 통이 넓은 하카마를 무릎 아래에서 죄여서 입고 다니는 주제에 당번일을 할 때 입는 그 하의는 대체 무엇인가.
피부에 딱 달라붙는다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평소 입고 다니는 다른 하의와 갭이 지나치게 커서 천 위로 두드라지는 다리의 선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어쩐지 분한 기분이 들어서 이를 갈던 아게하는 조금 뒤 한숨을 쉬면서 속으로 덧붙였다.
…그래, 솔직히 구두나 버선에 가려지지 않은 그 맨발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꼼지락거리는 발가락이 귀엽다구!! 아니,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전부 다 그래! 사방팔방으로 삐죽 솟아난 그 머리카락도, 쉴틈 없이 데룩데룩 표정이 변하는 얼굴도, 신기한 걸 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눈도, 코도, 귀도, 입술도…… 아, 망할.
"으으……. 아무리 먼저 반한 사람이 지는거라고들 하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붓을 내려놓고 책상에 얼굴을 묻어버린 아게하는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면 중증이다. 더구나 요즘 들어서는 유난히 생각이 이상한 쪽으로 흐른다. 혹시라도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무츠노카미가 알게 된다면…
오싹.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단정지어 말 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싫어하지 않을까. 저런 생각으로, 저런 마음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알게되면 누구든 꺼림직해하는게 평범한 반응이니까. 절대로 들키면 안돼. 라고 생각하자마자, 티 안낼 자신 있어? 라고 마음 한 구석에서 목소리가 묻는다.
…솔직히 자신 없다.
"앞으로 한 동안 무츠노카미는 다른 애들이랑 원정을 보내야겠다."
지금 이 상태라면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크게 동요하리라. 자신이 어느 정도 마음을 가다듬을 때까지는 무츠노카미를 멀리하는 것이 그와 자신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며 아게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방적인 마음은… 그냥 짐만 될 뿐이니까…."
마음이 어지럽다.
이 상태로는 계속 책상 앞에 앉아 있어봤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했기에 아게하는 일찌감치 방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고서 오늘의 근시인 야겐을 부르기 위해서 장지문을 열었다. 안그래도 자리에서 일어서고 보니 머리가 살짝 어질어질한 것이 열이 나는 것 같았기에 방으로 돌아가기 전에 야겐에게 약을 받고서 가면 딱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오, 마침 아씨에게 볼일이 있었는디, 운이 좋구마!"
지금 이 순간 아게하가 혼마루에서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는 남사가 바로 눈 앞에 서 있었다.
*
"…래서 아씨에게 옷 수선을 부탁하고 싶은디, 괜찮겠어라?"
무츠노카미의 설명을 들은 아게하는 무릎 위에 놓인 다홍색의 기모노 상의를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렸다. 방금 전까지 무츠노카미가 몸에 걸치고 있었던 거라고 생각하니까 얼굴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아게하는 그 감각을 애써 무시하고 예의 찢어진 부분을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생각했던 것보다 찢어진 부분은 작았지만 그래도 일말의 불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난 괜찮지만… 기모노를 수선해 본 적은 없는데?"
"기냥 꼬매주기만하믄 되니까 걱정 안해도 되어."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야?"
그렇게 말하며 아게하는 바느질을 하기 위해서 반짇고리를 열었다. 사람 일은 참 알수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하자마자 그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찾아오질 않나. 그 사람과 단 둘이서만 오도카니 있게 되질 않나. 더구나…
"암튼 덕분에 살았소. 여벌도 있기는 헌데 죄다 빨아서 말리느라 당장 입을게 없어서 말여."
…그 사람이 전에는 보도못한 수위의 노출을 선보이지를 않나.
물론 아주 본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장에서 싸우다가 남사들의 옷이 크게 찢어지거나 흘러내리는 일이 종종 일어나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찰나의 순간이었고 적을 해치우고 난 뒤에 남사들은 곧바로 옷매무새를 정리했기에 그 걸 길게 볼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헌데 지금 아게하의 곁에 있는 무츠노카미는 평소의 옷차림에서 한꺼풀 벗은 채로 앉아 있다.
전부터 그의 옷 아래는 어떻게 생긴걸까 하고 궁금해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실물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아게하는 무츠노카미의 모습을 눈에 담아두고 싶다는 욕심과 남을 빤히 쳐다보는 것은 실례라는 생각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당번 일을 할 때 입는 옷은 어쩌고?"
"아무래도 그긴 대련할 때 입기에는 곤란하니까…"
머쓱한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는 무츠노카미를 바라보며 아게하는 생긋 웃었다.
곤란한 건 바로 나야!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건 제 무덤을 파는 행동이라 차마 실행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지금에서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무츠노카미가 평소 속에 입고 다니는 검은색 조끼 처럼 생긴 옷은 아무래도 지금 그녀가 수선하고 있는 다홍색 상의보다는 짧았나보다. 하카마의 옆트임 너머로 보이는 것이 그의 맨다리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바늘로 손가락 끝을 찌를 뻔한 아게하는 잠시 눈을 감고 미간을 지그시 눌렀다.
얼른 바느질을 마치고, 무츠노카미를 내보내고, 방으로 직행하는 거야.
그리고 며칠간 방안에 틀여박혀도 괜찮지 않을까? 밥이랑 서류는 근시들에게 가져다 달라고 하면 되고…
근데 기모노란 건 원래 이렇게 야한 옷이었어?
"아씨, 혹시 어디 아픈겨?"
혼자만의 고민에 잠겨있던 아게하는 가까운 거리에서 무츠노카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놀라서 눈을 뜨고서 바로 코 앞에 있는 무츠노카미의 얼굴에 한 번 더 놀랬다. 우와, 가까워. 가까이서 아게하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무츠노카미는 걱정스러워하는 얼굴로 손을 들어서 아게하의 뺨을 감쌌다.
"이제보니 얼굴도 벌건게 열도 있는 거 같구만. 미안혀, 내가 좀 더 빨리 눈치를 챘어야 하는 건디…"
머리가, 어지럽다.
귓속에서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가 울린다.
마음에 둔 사람의 체취가 코 끝을 간지럽힐 정도로 이렇게나 가까이에 있는데. 어째서 마음은 전해지지 않는 걸까? 그 질문에 마음 한 구석에서 아까의 목소리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지금까지 그 마음을 확실하게 전해보려고 한 적은 있니?
아니, 없어.
그럼 이 기회에 '확실하게' 알게 해주는 건 어때?
마음 속의 목소리가 말하는 '확실하게'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렇게 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 저기…… 아씨?"
문득 정신을 차리고보니 아게하는 자신이 무츠노카미의 손에 뺨을 부비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걱정하는 듯, 당황하는 듯한 그의 안절부절한 얼굴이 사랑스럽다. 여전히 그의 손에 뺨을 부비며 눈을 똑바로 바라본 채로 미소를 짓자 무츠노카미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