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게하는 부엌 입구 쪽에서 들려오는 소근대는 목소리에 손에 들고 있던 갓 구운 브라우니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부엌 문가에는 아키타와 고코타이를 비롯한 단도 남사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부엌 안을, 특히 아게하의 손에 들린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브라우니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든 아게하와 눈이 마주친 단도들이 머슥한 듯이 뒷통수 또는 콧등을 긁적이자 아게하는 방긋 웃으면서 단도들에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 무슨 일이야?"
"저, 그게… 아침에 일어나니까... 어디선가 달콤한 냄새가 나서…"
고코타이가 머뭇대며 말하자 아게하는 속으로 아차하고 탄식했다. 원래는 아침식사 시간에 남사들에게 깜짝 선물 할 작정으로 잠도 줄이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부지런히 만들었는데, 아무래도 모두에게 충분히 나눠줄 수 있을 정도의 양을 준비하기 위해서 계속 브라우니 반죽을 구워댄 탓에 혼마루 구석구석까지 냄새가 퍼진 모양이다.
완전히 감출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빨리 발각될 줄이야.
"으응, 실은 너희에게 줄 과자를 만들고 있었어. 이제 막 마지막 반죽을 구운 참이야."
"과자요?!"
아게하의 입에서 과자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단도들의 얼굴이 단박에 밝아졌다. 아게하가 과자를 나눠줄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몸이 근질거렸는지 맨 앞에 서 있던 아키타가 부엌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도 도울게요!"
"후후, 그래준다면 고맙지. 으음, 뭘 부탁하면 좋을까…."
"아키타랑 고코타이랑 사요는 이 과자를 잘 잘라서 여기 있는 종이 접시에 담고… 마에다는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고, 아이젠은 다른 남사들 좀 불러와 줄래?"
"맡겨둬!!"
잔뜩 신난 얼굴로 부엌 밖으로 달려나가는 아이젠을 보며 아게하는 방긋 웃었다. 기껏 준비한 깜짝 선물한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저렇게 기뻐해주니까 아무래도 괜찮지 않을까?
***
무츠노카미는 별로 기쁘지 않았다.
아침부터 혼마루에서 달콤한 냄새가 솔솔 풍기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아무래도 오늘은 아게하가 살던 곳에서 '발렌타인 데이'라고 부르는 명절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이 '발렌타인 데이'에는 연인 또는 가까운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겸사겸사 지금까지 날 도와준 답례로 모두에게 감사인사도 할 겸 브라우니를 만들어봤어. 입맛에 맞는다면 좋겠네…."
조금 걱정되는 듯 머쓱해하는 얼굴로 설명을 마친 아게하는 남사들에게 과자가 담긴 접시들을 건네주기 시작했고, 남사들은 아게하가 직접 만들어준 과자를 먹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특히, 하세베는 감격한 나머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접시를 받아갔다.
하지만 무츠노카미는 떨떠름한 얼굴로 손에 들린 과자를 내려다 보았다.
아게하가 자신들을 위해 과자를 만들어준 것은 물론 기뻤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은 그녀의 '연인'인데… 다른 남사들과 똑같은 과자를 받았다는 사실이 살짝, 조금 많이 서운했다.
그러나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50여명이나 되는 인원을 위해 열심히 준비한 아게하에게 차마 그런 마음을 내비출 수가 없었기에 무츠노카미는 가만히 접시를 들고사 슬그머니 부엌 밖으로 나갔다.
***
"하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곁들여서 먹어도 맛있으니까, 먹고 싶은 사람은 얼마든지 가져가."
하품 하면서 남사들에게 브라우니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조합을 영업하던 아게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무츠노카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의아해했다. 분명 제 손으로 브라우니가 담긴 접시를 건네줬으니 근처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아게하는 부엌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무츠노카미?"
"아, 아씨?"
어깨를 축 늘어트린채로 툇마루에 걸터앉아 있던 무츠노카미는 아게하가 이름을 부르자 움찔하면서 돌아보았다.
"왜 그래? 혹시 브라우니가 입에 안 맞아?"
"으어? 아녀, 아녀 그런게 아니고…."
아게하의 질문에 무츠노카미는 눈길을 피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 걸까하고 고민하던 그는 초조함 반, 걱정 반으로 안절부절하는 아게하와 눈이 마주치차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서 입을 열었다.
"기냥… 딴 놈들과 똑같은기 쫌 서운하달까… 아, 물론 아씨를 탓하는 건 아녀! 나가 멋대로 실망한것 뿐인께… 하지만, 그라도 일단은 나가 아씨의 정인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쪼까 시무룩했던 것 뿐이여."
무츠노카미의 대답을 들은 아게하는 잠시 침묵하더니 얼굴을 살짝 붉히며 눈을 내리깔았다.
"…사실 네 것도 따로 준비하기는 했어. 하지만…"
"이게 뭐여?"
"초코 시럽이야."
자신이 내민 물건을 보고서 무츠노카미가 '그게 뭣이당가'라는 얼굴로 바라보자 아게하는 머뭇대면서 설명을 이었다.
"그러니까, 음식에 뿌려 먹는거야. 과자라든가 아이스크림이라든가…"
아게하가 나열하는 사용법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던 무츠노카미는 뒤에 이어진 말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사람이라든가."
"?!"
지금 제대로 들은건가. 놀라서 아게하의 얼굴을 보니 양 뺨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들은게 맞는 것 같다.
"이따가 밤에… 혼자서 내 방에 와?"
그 말을 끝으로 아게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무츠노카미를 남겨두고 부엌으로 돌아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