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볼버의 탄창을 만지작거리며 무츠노카미가 투덜거렸다. 막 쓰러뜨린 적의 잔해를 재확인하던 호리카와가 쓴웃음을 지었다.
"새 남사를 빨리 맞이하고 싶은 게 아닐까요? 전력은 많을수록 좋기도 하고."
"글치만 말여. 뭔가 영- 석연치 않은 것이."
"주명이라면 후도 유키미츠건 뭐건 간에 최단 시간 내에, 최대한 빨리 잡아가야 한다."
하세베가 칼날에 묻은 뼛조각을 털며 못을 박았다. 무츠노카미도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었고, 주인 아씨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도 최선은 다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뭔가가 자꾸 마음에 걸려 연신 발걸음이 한걸음에 반보 정도 늦어지고 있었다. 애꿎은 총의 안전장치만 만지작거리며 밍기적거리는 그의 모습에 이즈미노카미가 소리를 질렀다.
"그런 문제는 나중에 따로 해결 보고 지금은 전진하라고. 대장이 꾸물대고 있으면 나갈 수가 없잖아!"
"이즈미노카미, 마음은 이해하지만 아군 적군 구분은 해야 하지 않겠나."
나가소네가 이즈미노카미의 머리를 가볍게 쳤다. 입을 비죽 내밀며 팔을 내리는 이즈미노카미의 손에는 투석병의 기운이 담긴 구슬이 들려 있었다. 하세베가 혀를 차고 호리카와와 미츠타다가 각기 한 마디씩 나무라는 말을 던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무츠노카미는 여전히 뭔가를 중얼거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무츠노카미는 한 번 적을 마주하면 대충 하지는 못하는 성격이었다. 싸움을 즐기는 것은 아니나(오히려 쓸데없는 싸움은 피하고 싶어하는 측이었다), 주인이 믿고 보내준 이상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주인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다는 소박한 사욕(私欲)도 있었다.
"후, 어찌어찌 다 됐구마."
"괜찮아? 옷이 너덜너덜한데."
"원래 누더기 같은 옷이니 별 문제 없으어."
미츠타다의 시선에 무츠노카미는 나하하 하고 웃으며 한손을 휘저었다. 그 한손이 들어가 있는 소매며, 어깨가 움직일 때마다 덜렁거리는 어깨 갑주며, 적의 공격에 바람 빠진 듯 늘어진 바짓단 등 성한 곳은 별로 없어보였다.
"이래서야 아씨한테 또 한 소리 듣겄어- 옷 너덜너덜해지믄 엄청 화내는디, 아씨."
키들키들 쓴웃음을 삼키며 무츠노카미는 리볼버를 총집에 되돌렸다. 돌아가면 어떻게 말할지를 생각하던 그에게는 거꾸러진 줄만 알았던 적군 창이 갑자기 창을 다시 꼬나쥐고 일어서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 뒤에, 습격이다!"
하세베가 외쳤지만 이미 한 박자 늦은 알람이었다.
***
출진한 이들이 돌아올 때면 혼마루는 언제나 소란스러워졌다. 그 날은 특히 그랬다. 부산스레 외치는 목소리가 해가 거의 저물어 어둑해진 혼마루를 날카롭게 두드렸다.
"거기, 비켜, 비켜!"
"으앗, 중상!? 수리실 문 열고, 주군 모셔오고!"
침침하던 혼마루에 불이 환히 켜지고, 남사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부상자를 들쳐업은 이즈미노카미가 호리카와와 함께 수리실로 달려가는 동안, 하세베와 미츠타다는 주인의 방 쪽을 곁눈질하며 뭔가를 심각하게 이야기했다. 곁에 모여든 다른 남사들의 목소리까지 합쳐져 시끌시끌해진 혼마루 마당에 아게하가 나가소네를 따라 나타났다.
"어서 와, 다들 괜찮아?"
"다녀왔습니다, 주군."
"다녀왔어. 미안, 이번에도 후도 군은 못 찾았어."
"아.. 응, 괜찮아. 다음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닌데 뭐. 상황은?"
"후도 군을 찾는 걸 최우선으로 해서 다른 보수나 물자는 아직."
"훈련용 적이라 하나 상당히 강대한 적이었습니다. 만반의 준비가 필요할 듯합니다."
"다음부터는 선제공격으로 먼저 최대한 정리하는 편이 좋겠지."
"음음.... 응?"
진지하게 남사들의 이야기를 듣건 아게하가 문득 멈칫했다. 보통 출진 보고에는 대장이 빠지지 않는 법이었다. 분명 이번 출진 때에는 무츠노카미가 대장이었다.
"뭇츠는 어디 있어?"
"그것이......"
하세베가 말끝을 흐렸다. 나가소네는 먼 곳만을 보았고, 미츠타다는 최대한 천천히, 놀라지 않게 말할 방도를 찾아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왁자왁자한 목소리가 수리실 쪽에서 우르르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 녀석, 지금 제대로 너덜너덜해져 있는데. 수리실에다 대충 내려놓은 참이라고."
이즈미노카미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아게하는 냅다 달려나갔다. 급히 나오느라 대충 걸쳐신은 신발 한 짝이 날아가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그녀는 불이 켜져 있는 수리실로 냅다 달려들어갔다.
"뭇츠!"
방 안의 상황은 불행하게도 아게하의 예상과 꼭 같았다. 찢겨진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무츠노카미는 이불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아게하의 모습을 보자마자 일어나려 했지만 옆구리를 움켜쥐고 다시 자리에 털썩 떨어져버렸다.
"미안혀, 아씨. 딴 생각하느라 좀 방심해 버렸으어."
"미안하다는 것보다....."
"누가 꾸물거리다가 다치랬냐! 평소에 누가 빨리 뽑나 승부하자던가 하던 주제에."
아게하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이즈미노카미의 목소리가 꽥꽥 수리실을 때렸다. 무츠노카미는 상처와 고막이 동시에 찢어지는 것 같다는 양 몸을 웅크리더니 이내 그나마 성한 한쪽 팔을 들어 붕붕 휘저었다.
"뭣이여, 나가 그래두 되갚아는 줬으어!"
"너덜너덜해진 건 똑같잖아. 어째 넋 놓고 있더라니 그럴 줄 알았다! 아, 그냥 콱 내버리고 올 걸, 괜히 떠업고 와서 옷 버리고 말야."
"카네상!"
뒤따라 들어온 호리카와가 이즈미노카미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이즈미노카미는 목소리를 줄일 줄 몰랐다. 일어서지도 큰 소리를 내지도 못하는 몸 상태이면서도 무츠노카미 역시 그 말에 지지 않고 연신 받아쳤다.
지금 목소리를 높이면 상처가 울릴 거라며 말리면서도 아게하는 연신 불편한 기색이었다. 물론 아픈 사람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는 이즈미노카미에 대한 서운함이라던가, 일어서려다 움찔할 정도로 다쳐온 무츠노카미에 대한 걱정 때문인 것도 있었다. 그러나 아게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이유는 그 외에도 하나 더 있었다.
'사이 좋은 걸까.'
신센구미의 검과 유신지사의 검이라는 것 때문인지, 무츠노카미와 이즈미노카미는 친하다기보다는 묘한 경쟁감이 감돌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다친 상황에서도 평소처럼 편안히 투닥거릴 정도면 마음은 맞는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었고, 그것이 아게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무츠노카미가 다쳐온 상황에 속 편하게(?) 질투나 하고 있는 건 이상하다며 자신에게 따끔하게 마음 속으로 혼을 내도, 그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둘 다 그만하고. 뭇츠는 지금 상처도 안 나았는데 말싸움까지 시키면 어떻게 해?"
"으, 것도 그런가. 좋아, 그럼 빨랑 그 도움패 써서 낫게 하자고, 그럼 사양 않고 마구 쥐어팰 테니ㄲ... 웁!?"
아게하는 이즈미노카미의 입에 선인경단 한 꼬치를 쑤셔넣듯 물려놓았다. 나가소네가 부르러 와서 나갈 때부터 꾸러미에 싸서 가져온 것이었다. 난데없이 꽉 찬 입 안에 이즈미노카미가 버둥거리는 동안 아게하는 헛기침을 하고는 옆을 돌아보았다.
"호리카와, 이즈미 데리고 말당번 일 하러 가 줄래? 싸울 때 타고 갔던 말들도 돌려놔야 하고."
"네, 네-! 말 당번 일, 힘낼게."
"어이, 잠깐, 잠깐! 싸우고 막 왔는데 말당번 정도는 다른 놈들이랑 바꿔줘도 되잖풉!!??"
겨우 경단을 전부 목으로 넘긴 이즈미노카미의 활짝 벌려진 입에 또 한 꼬치가 우겨넣어졌다. 그가 바둥거리는 동안 아게하는 호리카와에게 선인경단을 건네며 당부의 말을 전했다.
호리카와는 어색하게 눈웃음을 지으면서 방 안을 흘끗 보았다. 이즈미노카미는 두 번째로 입 안을 채운 물건에 당황해 퍼덕거렸고, 그 너머의 무츠노카미는 어딘가 멍한 눈빛이었다. 그들과 아게하를 한 번씩 다시 훑어본 호리카와는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쪽으로는 걱정 안 해도 되는데. 카네상, 말 돌보러 가자!"
호리카와는 이즈미노카미의 옷을 능숙하게 잡아끌고 수리실 밖으로 나갔다.
한숨을 폭 내쉰 아게하는 옷자락을 그러모으며 수리실 한켠에 앉았다. 품 속에서 도움패를 꺼내 내밀려던 손길이 멈칫했다. 도움패를 쓰면 부상은 한순간에 말끔히 낫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물리적인 것뿐이었다. 다쳤을 때의 충격 같은 것은 계속 남아, 도움패를 써도 몇십 분 정도는 아픈 듯한 느낌이 남아있을 터였다. 사실 그렇기에 시간만 있다면 도움패 없이 시간을 들여 자연스레 낫게 하는 것에 남사의 정신건강에는 제일 좋았다.
간신히 이불 아래로 들어가는 무츠노카미와 손아귀에 쥐여진 도움패를 번갈아보던 아게하에게, 문득 하세베가 말을 걸었다.
"도움패가 부족한 것입니까? 지금 당장 원정이라도 다녀올까요? 주명이라면 뭐든지."
"아니, 그런 건 아니니까 오케이."
아게하는 반사적으로 손을 내저었다. 하세베는 그렇습니까, 라는 짤막한 대답 후 한 걸음 물러서 눈을 감고 우뚝 섰다. 아게하는 그를 옆눈으로 보며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하세베도 푹 쉬어. 수리실 남아 있으니까 그쪽 쓰고. 아, 이거 가져가!"
선인경단 한 꼬치가 내밀어졌다. 하세베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고개를 깊이 숙이며 영광이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그건 좀 오버다, 라고 마음 속으로 태클을 걸며 아게하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하세베는 어째서인지 벚꽃을 휘날릴 것 같은 기색으로 수리실에서 나갔다.
나간 이와 엇갈려 고개를 내미는 두 남사에게 아게하의 시선이 갔다. 미츠타다와 나가소네는 경상인 하세베보다도 상처가 없어 보였다.
"뭇츠 외에는 많이 안 다친 거 같네."
"대장만 노리고 덤벼드는 적은 성가시지. 미안하게 됐다."
"사과할 건 없는데. 이즈미랑 호리카와는 일하러 갔으니까 수리실 남을 거고, 괜찮으면 잠깐이라도 써. 아, 경단."
아게하는 남은 두 꼬챙이의 경단을 두 남사를 향해 내밀었다. 미츠타다는 '땡큐'라고 말하여 안대에 가려지지 않은 쪽 눈을 찡긋했고, 나가소네는 쑥쓰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경단을 받아가 입에 물었다.
"쿨럭, 쿨럭!"
갑자기 무츠노카미가 요란하게 기침을 했다. 누가 들어도 일부러 냈다는 티가 역력한 과장된 기침이었다. 그러나 아게하는 깜짝 놀라 화들짝 앉은 자세를 옆으로 돌렸다.
"상처가 쪼까 아프어! 켁, 켁!"
"뭇츠!? 갑자기 왜 그래, 혹시 상처가 울린 거야?"
"나도 모르것, 어."
무츠노카미는 그렇게 말하며 몸부림을 가장해 몸을 스리슬쩍 움직였다. 등을 보인 자세 그대로 등을 아게하의 무릎에 스리슬쩍 딱 붙여왔다. 당황해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걸까, 아게하는 구급상자를 찾다가 이내 손을 내밀었다. 상처를 피해 무츠노카미의 허리 부근을 조심조심 다듬어 주는 손길이 상냥했다.
그걸 본 미츠타다가 쿡쿡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질투나는걸. 나가소네 씨, 나가자."
"아, 뭐, 그렇군."
수리실 문 밖으로 나가는 나가소네의 표정은 도깨비한테 홀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덜컹, 탁. 수리실 문이 닫히자 방 안이 놀라우리만치 고요해졌다. 아까 전까지 오버액션으로 아프다는 말을 하던(꾀병은 아니었다. 진짜 그만큼 다친 건 사실이니까) 무츠노카미는 언제부턴가 입을 딱 닫고 있었고, 아게하는 그제야 자신의 무릎에 와 닿은 그의 체온을 눈치챘다. 쑥쓰러움이나 두근거림에 앞서, 다친 무츠노카미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알 수 없어 그녀는 우물거렸다.
'간병이라는 거 하는 거였지. 하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아프면 약 먹고 휴식이면 땡이라는 것이 신조인 집에서 자란 아게하에게 간병이란 무척이나 생소한 것이었다. 약을 먹이자니 인간이 아닌 도검남사에게 인간의 약이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그렇다고 불쑥 자원만 내미는 건 성의 없어보일 테고, 옷을 갈아입히자니 아게하 체력에 무츠노카미 정도의 건장한 남사의 옷을 혼자 갈아입히는 건 무리였다.
얼굴이 빨개졌다는 것도 모른 채 머리를 연신 굴리던 아게하는 결국 입을 열었다.
"뭇츠, 뭔가 필요한 거 있어?"
멋은 없지만 제일 안전한 방법이었다. 아게하는 자세를 고쳐앉으며 무츠노카미의 얼굴을 들여다보려는 듯 몸을 쭉 빼고 물었다.
무츠노카미는 뭔가 웅얼거렸다. 아게하에게는 잘 들리지 않는 엄청나게 작은 웅얼거림이었다. 잠시 후, 그는 베개에 머리를 부딪히는 시늉을 하더니 대답했다.
"경단, 묵고 싶으어."
"경단?"
아게하는 땀을 흘렸다. 아까 미츠타다와 나가소네에게 건네준 것이 마지막이었다. 방이나 부엌에는 더 있겠지만 어느 쪽도 수리실에서는 꽤 떨어져 있었다. 어째 아까부터 이쪽으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무츠노카미의 귀를 바라보며 쩔쩔매던 아게하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잠깐만. 부엌에 분명 비상용이 남아 있을 거야...?"
일어나던 아게하는 갑자기 치마를 잡는 손길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옷자락을 꾹 움켜쥔 무츠노카미는 어느새 다시 제 주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잘 놀아주던 주인이 갑자기 나가버리려 할 때의 애완견마냥 머리카락을 축 늘어뜨린 채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 꼭 엄청 묵고 싶단 건 아니여, 그니까 아씨가 나갈 필요 없으어."
"경단 먹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농이여, 농! 아씨가 여기 있는 게 훨 나어! 아으아으어...."
유독 크게 씩 웃던 무츠노카미가 갑자기 눈을 찌푸리며 옆구리를 감싸쥐었다. 그렇잖아도 원래 상처가 있는 자리 위를 고속창이 찔렀으니 오죽 아플까. 이를 까득 악물고 몸에 잔뜩 힘을 주다 털썩 몸을 이불 위에 떨어뜨리는 무츠노카미의 모습에 아게하는 한층 더 가슴이 요동쳤다.
"많이 아파?! 잠깐, 이럴 땐, 어 그..... 그렇지, 피라던가 먼지라던가 닦아야!"
그렇게 말하며 아게하는 수리실에 늘 놓여있는 수건을 잡아당겼다. 한구석에 놓인 냉각재에 빠르게 푹 담갔다 꺼낸 수건을 급히 꾹 짜더니 그것으로 무츠노카미의 얼굴이며 팔 등 옷 밖으로 드러나 있는 부분을 빠르게 훔치기 시작했다. 맨살에 닿는 차가운 느낌에 무츠노카미가 머리털을 쭈뼛 곤두세웠다.
목 쪽을 꾹꾹 눌러닦은 아게하가 수건을 들여다보았다. 생각보다 덜 묻어나온 결과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옷은 엄청 찢어졌는데. 뭇츠, 혹시 적 대장이랑 싸우기 한참 전부터 다쳤던 거야?!"
"에이, 아니여, 아니여. 그기 아니구, 이즈미한테 업혀서 돌아올 때 그쪽 옷에 다 닦여나간 모양이여. 피라는 게 원체 금방 굳는 거두 있고. 나하하."
무츠노카미는 이마에 흐르는 냉각재를 손으로 훔치며 짐짓 웃었다. 그러나 아게하는 어째서인지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한구석에 고이 내려놓으려던 수건을 다시 쥐고 움직였다.
"으와, 아, 아씨, 잠깐!?"
무츠노카미는 옆구리가 시큰 아픈 것도 잊고 팔을 내저었다. 그러나 이미 일은 벌어져 있었다. 아게하는 옷가지 아래에 가려져 있던 살갖을 수건으로 꼭꼭 문질렀다. 상처를 피해가며 닦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빠르고 힘이 들어간 동작이었다. 무츠노카미가 얼굴이 벌개져 아게하의 어깨를 떠미는 시늉을 하자 아게하는 눈꼬리를 세우고 입을 비죽 내밀었다.
"뭐, 뭐. 옷 아래에 묻은 건 안 닦였을 테니까 해 주는 건데."
"아니, 그, 아씨기 일케 생각해주는 건 엄청 고마운디, 그치만 말여, 이건 위험혀!"
"상처 쪽은 안 누르고 있잖아, 움직이면 닦기 힘들....!?"
가슴팍을 열어젖히려던 손이 딱 멈추었다. 그제서야 아게하는 지금 자신이 어떤 포즈인지를 돌아볼 수 있었다. 두 손으로 무츠노카미를 이불 위에 덮쳐누른 자세였다. 게다가 옷 아래를 닦아준답시고 부산스레 움직였던 손은 상대의 상의를 훌떡 벗겨놓기까지 했다. 얼룩진 물수건이나 상처난 몸이 아니었으면 사니와가 남사를 성희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나사가 어긋나 있던 머리에 이성이 돌아왔다. 아게하는 깜짝 놀라 급히 손을 뗐다. 미안하다고 연달아 말하며 그녀는 몸을 옆으로 굴려 빠져나오려 했다. 자리에서 비키려던 그녀를 멈춰세운 건 상처투성이지만 듬직한 손이었다.
"크흠, 잘 생각해 봤는디 이렇게 간호받는 것두 괜찮은 것 같어."
"아니아니, 아까 뭇츠 말대로 위험하지 않아? 이거."
"글킨 헌디, 나는 괜찮어. 아씨가 놀라지만 않으믄."
순박하게 웃으며 무츠노카미는 아게하의 손목을 조심스레 놔 주었다. 아게하는 내려오지 않았다. 제법 멋지게 말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던 건지, 무츠노카미는 자랑스레 아게하를 올려다보았다. 잠시 후, 그는 아게하의 허리에 손을 포개며 말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게하가 입을 헤 벌렸다. 아까 전까지는 부상으로 얼굴이 창백하던 무츠노카미의 얼굴이 어느새 홍당무가 되어 있었다. 거기에 얼굴을 들여다보려 하니 얼굴을 한쪽으로 돌리고 뭐라 중얼거리는 것 아닌가.
"뭇츠, 설마 질투?"
"우, 나도 질투 정도는 혀!"
정곡을 찔렀다. 무츠노카미는 아게하의 허리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꽉 주며 필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아씨는 딴 녀석들한테두 잘 해 주잖여, 거야 아씨는 우리 주인이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저쪽에서도 글케 생각할지는 모르는 일이여, 그러니까 어, 그 뭣이여, 그..... 딴 녀석들이 아씨한테 선수 치면 으쩌나 싶어서 말여..... 아씨, 지금 웃었제?"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던 무츠노카미가 갑자기 부 볼을 부풀렸다. 아게하가 고개를 하늘 위로 들고 큭큭거리고 있었다. 고개는 젓고 있었지만, 안 웃었다고 거짓말을 하는 목소리에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쑥스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아게하가 웃는 걸 보는 건 좋아하지만, 이런 식으로 놀리는 듯한 웃음은 말여... 하고 무츠노카미는 중얼거렸다.
"!?"
겨우 웃음을 진정하려던 아게하가 펄쩍 뛰었다. 아까 전까지 옷 위로 허리를 잡고 있던 손이 어느 새 위아래 옷의 틈새를 찾아 더듬고 있었다. 손에 힘을 주어 끌어내리면 하의가 딸려내려갈 것 같은 자리에서, 손이 안절부절 못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허리를 타고 몸 전체에 전율이 흘렀다.
"뭇츠, 손!"
"나는 아씨한테 이러구 싶은 적이 많은디, 아씨는 그냥 다 좋게좋게 지내자구 허구, 우...."
아게하는 하마터면 누가 할 소리를 하는 거냐고 외칠 뻔했다. 그러나 무츠노카미는 시무룩한 대형견 같은 표정을 짓고 누워서 시선을 겉돌게 하고 있었다. 있을 리 없는 강아지 귀와 꼬리가 축 처져있는 것 같았다.
"싫은 건 아닌데, 상처는 낫고 해야 하잖아!"
"도움패란 거 쓰면 금방이잖여."
"그건 정말 어쩔 수 없을 때. ... 그러니까 그런 표정은!"
무슨 표정을 얘기하는 거냐고 묻듯 무츠노카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옷 틈새 사이에서 위험하게 노는 손가락들과는 달리 표정은 순진하기 그지없었다. 어느 쪽에 넘어간 건지 모른 채, 아게하는 몸을 낮춰 무츠노카미의 콧잔등에 입을 맞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