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게하가 두 팔을 번쩍 치켜들고 뒤로 풀썩 쓰러졌다. 그 옆에 앉아있던 무츠노카미 역시 기지개를 켜며 크게 하품을 했다.
"수고혔어, 아씨. 오늘은 워째 유달리 일이 많당가?"
"위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일을 보내온 거 있지. 한 개를 처리하면 두 개가 추가로 오고, 으으, 지옥 같았어. 그래도 이제 끝, 끝!"
아게하는 누운 채로 손을 팔랑팔랑 저었다. 그녀가 방금 전까지 마주하고 있던 책상 위에는 서류철이 산더미처럼 쌓여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었다. 무츠노카미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게하가 지쳐 쓰러지기 전에 일이 끝난 것이 그로서는 정말 다행이었다.
"얼릉 잘 준비 혀, 밤이 깊긴 해두 아직 날은 안 밝았으여, 눈 붙일 시간은 있을 거여."
"뭇츠도 슬슬 잘 준비 해야지, 피곤할 텐데. 정말, 나 혼자도 괜찮다니까 꾸역꾸역 같이 밤새우고."
"아씨를 냅두고 혼자 늘어지게 자두 잠자리가 뒤숭숭할 뿐이니까 괜찮으여! 게다가 내는 밤새는 건 문제도 아니여, 야전도 잘 허고."
"이거랑 야전이랑은 상관 없잖아."
태클을 걸면서도 아게하는 후후 웃었다. 그 웃음에 무츠노카미는 일부러 한쪽 팔에 알통을 세워 보이면서 씩 웃었다. 솔직히 밤이 깊도록 일어나 있는 것은 힘들었지만, 아게하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면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그였다.
그 때, 아게하가 몸을 벌떡 일으켜 앉았다. 그녀는 허리를 앞으로 쭉 숙여 몸을 펴더니, 곧 입을 비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그래도, 어째 잠이 안 오네. 피곤하기는 한데."
"아씨, 괜찮은겨? 혹시 불면증이여?"
"아니야. 가끔 너무 피곤하면 되려 잠이 안 올 때가 있어서."
아게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뒷목을 탁탁 두드렸다. 그렇게 오랫동안 책상을 내려다보고 있었으니 목이 쑤실 만도 하겄지. 무츠노카미는 속으로 혀를 찼다.
"으으, 이러다 내일 아침에는 온몸이 비명을 지를 것 같아."
"오늘 유달리 무리한 편이니 말여. 뼈마디가 쑤실 것인디."
"아직 새파란 청춘인데 벌써부터 관절로 고생하긴 싫어-"
파닥파닥 두 팔을 휘젓는 아게하의 모습에 무츠노카미는 큭큭 웃었다. 아게하의 나이는 결코 어린 편은 아니지만, 무츠노카미와 함께 있을 때의 그녀는 때때로 소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는 했다. 그만큼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주고 있는 것일까 하고 무츠노카미는 잠시 희망에 가까운 망상을 했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은 후, 그는 아게하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장난스레 말을 건넸다.
"그럼 안마라도 받는 게 어뗘? 근육도 풀어지고 잠도 잘 올 거여."
반농담으로 꺼낸 말이었다. 혼마루의 거주자는 많지만 그 중에 안마 기술을 지닌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무츠노카미가 아는 한은 그랬다. 그러나 아게하는 의외로 진지한 표정으로 흠, 하고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안마... 왠지 할머니가 되는 느낌이라 좀 그렇긴 하지만, 괜찮을지도 몰라."
"아씨?"
"응, 괜찮을지도. 긴장도 풀리고, 혈액순환에도 좋고. 안마라고 하면 역시 좀 나이든 느낌이 드니까 마사지로."
"마...? 아, 서양 말로는 글케도 말한댔제."
얼마 전 만물상에서 사 온 이국의 단어장을 떠올리며 무츠노카미는 멍하니 맞장구를 쳤다. 그 단어를 읽을 때 우연히 같은 방에 있던 닛카리 아오에가 뭔가 쓸데없는 말을 던져서 혼마루가 왁자지껄해졌던 적이 있었는데, 무슨 내용이었더라? 밤을 샌 탓인지 무츠노카미의 머리는 그날따라 좀 둔하게 움직였다.
그런 그를 눈치채지 못한 듯, 아게하는 무츠노카미를 향해 돌아앉으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응. 마사지, 좋네. 사실 이렇게 주물주물 혼자 주무르고 있어도 풀리기는 하지만."
그렇게 말하며 아게하는 그녀 자신의 옷깃을 살짝 잡아당겼다. 목을 반대쪽으로 기울이자 귀에서부터 어깨까지 쭉 이어진 하얀 목덜미선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 위에 가느다란 손가락을 얹어 조물조물 주무르는 손길은 마치 첫눈으로 눈토끼를 만들려 애쓰는 귀여운 아이 같았다.
무츠노카미는 그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아게하는 목덜미가 차갑다, 어깨가 뻣뻣한 것 같다 등등 이런저런 볼멘소리를 하며 손을 연신 움직였다. 손바닥 뒤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뽀얀 목덜미는 쫄깃한 찹쌀떡처럼 보였다. 한 입 깨물면 얼마나 보드랍고 따뜻할까 생각하자 무츠노카미의 입이 헤 벌어졌다.
'아니, 나가 시방 무신 경 칠 생각을 하는 거시여!'
무츠노카미는 제 볼을 세게 꼬집었다. 스멀스멀 불씨가 붙으려 하는 이것이 그것인가,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라는 색욕인가. 아게하에게 독심 능력이 없다는 것이 새삼 고마운 그였다. 거의 볼을 잡아뜯을 기세로 한계까지 쫙 잡아당기자 아게하가 눈을 깜빡였다.
"뭇츠, 졸려?"
"에, 으, 아, 그런 거여, 조금 졸려서 잠 좀 깰라고! 나도 지금은 인간 같은 몸이잖여, 하하."
"흐응... 그럼 뭇츠한테 부탁하긴 좀 미안할까."
"엥? 뭣을 말이여?"
아게하의 얼굴에 살짝 어두운 기운이 돌자 무츠노카미는 재빨리 제 손을 놓았다. 그는 아게하가 두 검지손가락을 맞대 누르며 뭔가 주춤거리는 것을 이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시원시원 얘기하는 아게하의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희한한 반응이었다.
"아니, 뭇츠가 피곤하다면 굳이 부탁할 수는 없지만... 그, 괜찮으면 뭇츠가 안마해주면 안 될까 해서. 혹시 하는 법, 알아?"
안마는 상대의 몸을 주무르고 문질러 몸의 혈액 순환을 돕고 긴장된 근육을 푸는 행동이다. 즉 아게하의 몸에 손을 대야 한다는 것이었다. 등을 토닥이거나 머리를 쓰다듬는 정도까지는 자주 하지만, 그래도 몸 전체를 공들여 만지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차원이 다른 스킨십이었다.
무츠노카미는 제 얼굴에 누군가가 성냥을 문질러 불을 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아게하는 손깍지를 끼며 흘긋 바깥을 곁눈질했다.
"사실 뭇츠도 피곤할 테니까 이런 부탁하면 안 될 것 같지만, 내가 내 등을 주무를 수도 없고. 으응... 그래도, 역시 참았다가 다른 사람한테 부탁할까. 단도들 중에서 손힘이 센 아이가......"
"그건 안 되어, 아씨!"
무츠노카미는 자신도 모르게 바닥을 팡 두들겼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아게하가 깜짝 놀라 다시 주저앉았다.
"놀래라. 뭇츠, 왜 그래?"
"단도들헌티 부탁하는 건 반대여. 갸들도 알 건 다 알어! 애초에 말여, 단도들이 내보다 훨씬 나이 많으어. 으떤 의미에선 훨씬 위험혀!"
"위험하다니, 그건 또 무슨......
"아, 아무튼 괜찮으어! 단도들 깨울 것두, 아씨가 기다릴 것도 없으어! 나가 할 거여!"
입 밖으로 확 던져진 제안에 누구보다 무츠노카미 자신이 놀랐다. 하지만 이미 쏟아진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었다.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 그는 황급히 방 구석으로 기어갔다. 아게하가 가끔 집무실에서 밤을 샐 때 사용하는 예비용 이불이 거기 쌓여 있었다.
허둥지둥 이불을 펴는 무츠노카미는 자신의 등에 꽂히는 아게하의 시선을 느꼈다. 황당해하고 있을까, 웃고 있을까. 차마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아 그는 일부러 팡팡 소리를 내며 이불을 두들겨 폈다.
"뭇츠가 해 준다면 나야 고맙지만... 응, 그럼 부탁할게."
승낙의 말에 무츠노카미는 홱 뒤를 돌아보았다. 아게하가 복숭아빛을 띤 볼을 긁적이면서 웃고 있었다.
하마터면 이불에 그대로 엎어질 뻔한 몸을 추스르며 무츠노카미는 간신히 책상다리를 하고 이불 옆에 앉았다. 쑥쓰러움을 감추려 씩 웃으며 손짓을 하자 아게하가 몸을 일으켜 그 옆으로 사뿐사뿐 다가왔다.
"어디가 가장 쑤시는 거여? 역시 목?"
"목도 목이지만, 지금은 온몸이 다 아프니까. 엎드려 있을 테니까, 상세한 건 뭇츠한테 맡길게."
아게하는 그렇게 말하며 이불 위에 폭 엎드렸다. 팔에 얼굴을 묻고 근시를 옆눈으로 바라보는 눈길에는 설렘과 긴장, 졸림이 절묘한 비율로 어우러져 있었다. 무츠노카미는 일부러 송곳니가 다 드러나도록 씨익 웃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얼굴 근육이 풀어져 꼴사나운 헤벌레한 표정을 보일 것 같기 때문이었다.
'침착혀, 무츠노카미 요시유키. 아씨는 피곤한 것뿐이여, 아씨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급선무여!'
자신을 다독이며, 무츠노카미는 입 속으로 염불을 외웠다. 일전 야마부시 쿠니히로에게 배운 '번뇌를 쫓는 염불'이었다. 입술이 소리없이 움직이는 것에 아게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손뼉을 딱 쳐 마음을 가다듬은 후, 무츠노카미는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맨 처음 닿은 것은 아게하의 어깨였다. 생각 이상으로 뭉쳐 딱딱해져 있었다.
"아이고, 아씨, 일케 되도록 무리한 거여? 쉬엄쉬험 하지 않으면 안 되야."
언뜻 너스레로도 들리는 말이었지만 그것은 무츠노카미의 진심이었다. 그는 손아귀에 체중을 실어 아게하의 어깨를 꾹꾹 눌렀다. 아게하는 처음에는 아픈지 어깨에 힘을 팍 주었지만, 근육을 주물주물 풀어주는 무츠노카미의 손길에 점차 긴장을 빼고 있었다. 어깨가 점차 주저앉고, 곤두서 있던 날개뼈와 팔뚝이 스르르 처졌다.
"아, 시원해."
"아씨, 이 정도면 괜찮어? 아프지는 않어?"
"응, 딱 좋아. 뭇츠는 역시 힘이 세네, 피로가 확 빠져나가는 기분이야."
콧노래 사이로 아게하가 칭찬했다. 무츠노카미는 헤실헤실 웃으며 손을 움직였다. 한 손은 뻣뻣해진 목덜미를 어루만고, 한 손은 등을 꾹꾹 눌렀다. 척추를 따라 꾹꾹 눌러 내려가는 손길이 문득 허리에 닿자 아게하가 흠칫 떨었다.
"으응......."
"?! 아, 아픈겨?!"
"아니, 괜찮아. 조금 간지러워서 그런 거니까, 내가 무슨 소리 내도 신경쓰지 말고 해 줘."
아게하는 손으로 ok 사인을 그렸다. 아니, 신경쓰지 않는 게 무리잖여, 라고 속으로 대답하며 무츠노카미는 손을 다시 움직였다. 혈액순환이 잘 안 된 건지 허리가 좀 차가웠다. 그 부분을 꾹꾹 누를 때마다 아게하가 가벼운 신음을 흘렸다.
손길 아래로 느껴지는 아게하의 허리 라인에 무츠노카미는 무척 긴장하고 있었다. 아게하의 허리는 잘 빠진 호리병처럼 쏙 들어가 잘록했다. 손을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옷자락 아래에 자리하고 있을 보드라운 살결이, 허리 아래로 이어져 있을 풍만한 엉덩이의 라인이 자동으로 그려졌다.
'나가 지금 무슨 천벌받을 생각을 하는 거여!'
무츠노카미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그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자 아게하가 흣 하고 야릇한 한숨소리를 냈다. 이를 어쩌나, 그 한숨소리가 한층 무츠노카미의 남심을 뒤흔들었다. 아게하가 숨을 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몸이 마치 허릿짓을 하는 요염한 모습을 연상시켰다. 자신의 몹쓸 상상력에 무츠노카미는 머리를 박고 싶어졌다.
"마사지 잘 하네. 시원해......"
아게하의 목소리가 유난히 교태스럽게 들리는 것은 어째서인지. 무츠노카미는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입 속의 살을 꽉 씹었다.
떨어지기 싫다는 손을 억지로 떼어 무츠노카미는 자신의 볼을 두들겼다. 그것을 아게하는 조금 다른 신호로 받아들인 듯했다.
"아씨!?"
등이 곤두서는 것을 무츠노카미의 이성이 간신히 잡았다. 하지만 시각적 자료 때문에 그것조차 위태로웠다. 아게하가 조심스레 몸을 뒤집어 무츠노카미를 올려다보는 자세로 누워 있었다. 발갛게 물든 뺨을 오물거리며 그녀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앞은 살살 해야 돼?"
하늘이시여.
무츠노카미는 탄식을 내뱉었다. 이 상황에서는 참아야 하는 것입니까, 그대로 돌격해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 후자는 명백히 아게하를 울려 버리게 되겠지만....... 그렇잖아도 고슬고슬 일어서 있는 편인 그의 머리칼이 한층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 아게하의 표정을 살폈다. ...조금, 아주 조금, 시도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무츠노카미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뭇츠?!"
무츠노카미는 슬쩍, 아게하의 위에 올라탔다. 아게하에게 체중의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허리를 띄우고, 무릎으로 제 몸을 지탱한 채 앉아 있었다. 무릎 때문인지 손에 닿은 아게하의 어깨 때문인지, 몸에 땀이 송글송글 솟았다. 무츠노카미는 후, 숨을 들이쉰 후, 아게하의 어깨를 빙글빙글 돌리듯 주물렀다.
"아, 응.... 무, 뭇츠, 간지러워....."
아게하가 몸을 배배 꼬았다. 아까 등을 마사지할 때와 닮은 한숨이었지만, 그 때보다 훨씬 야릇한 뉘앙스가 섞여 있었다. 무츠노카미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는 아게하의 손을 잡아올려 제 가슴에 갖다댔다. 아게하가 화들짝 놀랐지만 손을 떼지는 않은 것에 그는 감사했다.
"아씨, 미안혀. 계속 일케 할 건디... 싫으면 사정없이 떠밀어버려어?"
아게하의 손을 가슴에 꾹 누르는 무츠노카미의 목소리는 그 자신도 놀랄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아게하의 당황한 눈길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게하의 손가락이 무츠노카미의 가슴팍 위에서 어쩔 줄 모르고 움찔거리다, 이내 그의 옷자락을 꽉 붙잡았다. 무츠노카미는 아게하의 어깨를 매만져주던 손을 조금 더 농밀하게 움직였다. 아게하의 손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다.
***
온몸이 아프다.
아침에 눈을 뜬 아게하의 첫 생각은 그것이었다. 특히 허리와 배가 뭉근하게 쑤셔 왔다.
'이래서야 안마를 받은 의미가 없잖아. 으으.'
아니, 중간부터는 이미 안마가 아니었지만. 거기까지 떠올리자 아게하의 볼이 새빨개졌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은 아게하는 문득 제 옆이 허전한 것을 알아차렸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집무실 문이 드르륵 열렸다.
"아씨? 벌써 일어난 거여?"
무츠노카미가 눈을 깜작였다. 아게하는 그를 올려다보며 애꿏은 목덜미를 긁적였다.
"이제 막 눈이 떠졌어. 뭇츠, 어디 갔다 온 거야? 옆에 없어서 놀랐어."
"아침 식사 좀 가지러 간 거여. 아씨, 배고플 거 같아서 어찌어찌 급하게 가져왔어어."
그는 순박하게 웃으며 쟁반을 내려놓았다. 고슬고슬한 밥, 몇 가지 나물 반찬, 그리고 미소시루가 제각기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반찬은 어째 덜 무친 느낌도 나는 것이 거칠어 보이긴 했지만, 시장한 아게하에게는 그런 작은 흠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가지러 가도 되는데."
"워메, 뭔 소리를 하는 것이여. 아씨는 더 쉬어야 혀. 어제두 허리 빠지게 고생했을 건디... 흡."
무츠노카미는 도중에 입을 틀어막았다. 아게하도 얼굴이 새빨개져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같은 기억이 거의 동시에 떠올랐다.
"아, 그기 아니고, 나 말은 말여, 아씨, 어제 일이 많아서 고생했을 거라는 거여!"
"아, 응! 그, 그렇네, 응, 확실히 고생했지, 그래도 뭇츠가 안마해 줘서 많이 풀렸어, 아, 아하하하. 자, 잘 먹겠습니다!"
아게하는 휘휘 손을 내젓다 황급히 미소시루 그릇을 들었다. 상황을 가릴 요량으로 입에 머금은 미소시루였지만, 생각보다 맛있어 아게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소 먹던 것보다 국물 맛이 거칠기는 했지만 그것이 또 아침 기운을 차리게 하는 데에는 딱 좋았다.
"미소시루 맛있어. 어제 만든 게 남은 거야?"
"그건 아니구, 나가 급히 만든 거여. 다른 남사들에는 못 미쳐두 간단한 거 정도는 만들 수 있으어."
"뭇츠가 만든 거야?"
아게하는 두부가 동실동실 떠 있는 미소시루를 내려다보았다. 원래부터 따뜻할 국물이 한층 따스하게 느껴졌다.
입꼬리가 헤실헤실 벌어지는 것을 느끼며 아게하는 무츠노카미에게 그 그릇을 내밀었다.
"뭇츠도 먹어. 나 혼자 먹기에는 미안하니까, 같이 식사하자."
"내는 괜찮은디, 글치만 아씨가 말하는 거니까 실례 좀 혀. 잘 묵것습니다!"
무츠노카미는 손뼉치듯 합장을 한 후 그 그릇을 받아들었다. 그가 다소 게걸스레 미소시루를 들이키는 것을 아게하는 배시시 웃는 얼굴로 바라보았다.